[현장 취재] "지붕 있는 교실에서 공부하게 해달라"… 68혁명의 유령을 호출한 프랑스 10대들의 눈물 [Reportage sur place] « Étudions dans une salle de classe avec un toit »… Les larmes d’adolescents français invoquent le fantôme de la révolution de 1968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학생 시위

[로이터=연합뉴스. 재판매 및 DB 금지]

[현장 취재] "지붕 있는 교실에서 공부하게 해달라"… 68혁명의 유령을 호출한 프랑스 10대들의 눈물

파리 이탈리아 광장에서 울려 퍼진 "우리의 미래를 빼앗지 마라"

열악한 교육 환경과 긴축에 분노… 학부모·교사·노조 합세하며 사회적 대항쟁으로 확산

"우리가 반항하는 걸 원치 않았다면 랭보를 공부하게 하지 말았어야지!"

"오, 마리안느, 내가 손가락 하나만 까닥해도 너는 내가 너무 과격하다고 생각하는구나."

한불통신 파리) 13일(현지시간) 오전, 프랑스 파리 남부 이탈리아 광장(Place d'Italie) 일대는 검은 옷을 입은 고등학생들과 이들을 둘러싼 시민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학생들의 손에는 프랑스 문학과 공화국의 상징을 비튼 위트 있으면서도 뼈아픈 팻말들이 들려 있었다.

시위대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검은색 관 모형이 등장했다. 관 표면에는 큼지막하게 ‘청년들(Jeunesse)’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만성적인 교사 부족, 낡고 무너져가는 교실, 냉난방조차 되지 않는 학교 환경 속에서 청소년들의 꿈과 미래가 죽어가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웅변하는 슬픈 퍼포먼스였다. 

13일 프랑스 대규모 시위는 주최 측 추산으로 전국 48만 명으로 집계했다 정부 집계는 전국 16만 1천 500명으로 집계했다. 이날 경찰에 체포된 인원은 6천 8백 명으로 이중 86%가 미성년자로 밝혀졌다. 

2026년 10월 8일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행진하는 시위대. 한 플래카드에는 "우리의 상황을 뒤집어엎으려 한다면 또 다른 '68년 5월'을 선사하겠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지붕 있는 교실, 겨울엔 따뜻하고 여름엔 시원하게… 그저 평화롭게 공부하고 싶을 뿐"

이날 현장에는 학생들의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른들도 대거 거리에 나섰다. 학생들의 목소리는 과격한 투쟁이 아닌, 가장 기본적인 인간다운 교육 환경에 대한 절규였다.

고등학생 딸(16)의 손을 꼭 쥐고 시위에 참석한 50대 남성은 터져 나오는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아이들은 그저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일 뿐입니다. 학교 건물에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이 있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그저 평화롭게 공부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게 유일한 요구 사항입니다. 이게 어떻게 사치입니까?"

3주째 이어지는 시위 속에서 경찰의 최루가스와 과잉 진압이 이어지고 있지만, 아이들의 의지는 꺾이지 않고 있다. 파리 13구 르 르부르 고등학교에 다니는 한 학생(15)은 매캐한 매연과 매운 최루가스 바람 속에서도 눈을 비비며 자리를 지켰다.

"최루가스 때문에 여기를 떠나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우리의 권리와 존엄을 위해 싸우려고 여기 있는 겁니다."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호하던 고등학교 생물학 교사 밸러리(60) 씨는 "학생들이 거리로 나왔고, 우리는 당연히 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사는 더 많이, CRS(진압경찰)는 더 적게' [촬영 황윤정]

Z세대의 절규, 1968년 '5월 혁명'을 호출하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21일 파리 남동부 교외의 한 고등학교에서 시작되어 불과 3주 만에 전국 대학교의 90%에서 수업 차질이 발생할 정도로 거세졌다.

시위 현장 곳곳에는 '1968년 5월(Mai 68)'을 떠올리게 하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당시 프랑스 사회를 뿌리째 뒤흔들었던 '68혁명' 역시 열악한 대학 교육 환경과 전후 시스템의 부조리에 분노한 학생들의 움직임에서 출발했다.

'68'이라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나온 간호 실습생 바티스트(22) 씨는 "68년 5월은 젊은이들에 의해 프랑스의 역사가 바뀐 때"라며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싸움인 만큼 끝까지 연대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스웨덴의 세계적인 기후 활동가 그레타 툰베리도 파리 외곽 생드니의 학교 앞 시위 현장에 직접 찾아와 학생들과 어깨를 견놓았다. 툰베리는 기자들에게 "청년들이 사회적 논의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우리의 미래를 빼앗기고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파리 진압 경찰관들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재정 적자와 생활비 폭등… 대선 앞둔 프랑스 정국의 최대 폭약으로

프랑스 정부는 대체 교사 3,000명 긴급 투입 등 수습책을 내놓았지만, 시위대의 분노는 식지 않고 있다. 공공 부채가 3조 5천억 유로(약 5,260조 원)로 GDP의 120%에 육박하는 와중에, 정부가 추진하는 긴축 재정이 결국 교육과 복지의 후퇴로 이어졌다는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유가 급등과 고물가로 인한 생계 고통이 가세하면서, 이번 학생 시위는 2018년 마크롱 정부를 퇴진 위기까지 몰고 갔던 '노란 조끼(Gilets Jaunes)' 운동의 재현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내년 대선을 불과 7개월 앞둔 상황에서 정치권의 공방도 치열해지고 있다. 극좌당의 하나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당수인 장뤼크 멜랑숑 대표가  직접 시위 현장에 참가하며 학생들의 정당한 항거를 적극 독려했다.  극우당의 하나인 '국민연합(RN)' 마린 르펜 의원 당수는 "이것은 고등학생 시위가 아니라 극좌 세력이 뒤에서 조종하는 폭동"이라며 강하게 비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시간과 협의, 존중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자제를 당부했으나, 이미 거리로 나온 10대들과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다가오는 17일에는 전국적인 생활비 상승 항의 집회가 예정되어 있어, 프랑스 전체가 거대한 사회적 분수령을 맞이하고 있다. 

paris50k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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