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앙드레 다차리·자크 그리졸레 인천공항 및 부산서 유해 봉환식 및 안장식 Cérémonies de rapatriement et d'inhumation des dépouilles d'André D'Achari et de Jacques Grisolle à l'aéroport d'Incheon et à Busan
|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되는 고(故) 앙드레 다차리(왼쪽)·자크 그리졸레(오른쪽) 프랑스 참전용사. [국가보훈부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
6·25전쟁 프랑스 참전용사 2명,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 2026-05-25 11:58
한불통신 파리) 6·25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들을 누비며 대한민국을 지켜낸 프랑스군의 숨은 영웅, 고(故) 자크 그리졸레(Jacques Grisole) 원사의 활약상을 기록한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자원입대하여 두 차례나 한국 땅을 밟았던 그의 구체적인 전투 기록과 훈장 수훈 배경은 다음과 같다.
1. 6·25전쟁에서의 주요 활약상
그리졸레 용사는 유엔 프랑스대대 소속 육군으로 참전하여, 전쟁 역사에 기록된 가장 잔혹하고 치열했던 고지전과 방어전을 모두 겪었습니다.
1차 참전 (1951년 4월 ~ 1952년 7월)
소양강 전투: 중공군의 춘계 공세를 막아내며 유엔군의 반격 기틀을 마련한 전투입니다.
단장의 능선(Heartbreak Ridge) 전투: 미 제2보병사단과 프랑스대대가 강원도 양구 일대에서 전개한 지옥 같은 고지전이다. 격렬한 백병전이 오갔던 이곳에서 최전선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습니다.
공로: 1차 참전 과정에서 보여준 용맹함을 인정받아 무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되는 동성 훈장(Bronze Star Medal) 2개와 표창을 받았습니다.
최초로 프랑스 대대에서 한국군인을 수용 제안하여 교육 및 부대배치 등 한국군인들과 인연이 깊으며 참전했던 한국 군인에 대해 많은 증언을 남겼으며 훈장 추서를 했다.
2차 참전 (1953년 3월 ~ 1953년 10월)
전쟁 후반기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 직전, 가장 땅고지 싸움이 치열했던 시기에 다시 한번 자원하여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 시기 고인은 송곡 전투와 중가산 전투 등 중공군의 마지막 총공세를 온몸으로 막아내는 방어전에서 크게 활약하며 대한민국을 끝까지 지켜냈다.
2. 양국 정부로부터 받은 최고 권위의 훈장들
그는 한국 전쟁뿐만 아니라 이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알제리 전쟁까지 치러낸 베테랑 군인이었습니다. 평생에 걸친 헌신으로 양국 정부로부터 최고의 예우를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훈장 동백장 (2018년 수훈): 대한민국 정부는 6·25전쟁에 참전해 목숨 바쳐 싸운 그의 공로와, 퇴역 후에도 참전협회 활동을 통해 한-프랑스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를 기려 이 훈장을 수여했다.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Légion d'honneur) 그랑크루아 (2024년 수훈): 프랑스 정부가 수여하는 최고 권위의 훈장 중에서도 가장 높은 등급인 '그랑크루아'를 받았다.
프랑스 개선문 '불꽃의 수호자': 전역 후에는 파리 개선문 아래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 그곳에서 타오르는 불꽃을 꺼지지 않도록 지키는 명예로운 '불꽃의 수호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3. "내가 지킨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
자크 그리졸레 용사는 생전에 한국 정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살면서 받아본 적 없는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며 번영한 대한민국의 모습에 깊은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2024년 11월, 향년 96세로 세상을 떠나며 "내가 지켜낸 한국 땅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에 따라 고인의 유해는 국내로 봉환되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영원히 안장 되었다.
고(故) 앙드레 다차리(André Datcharry) 상병 역시 자크 그리졸레 원사와 함께 6·25전쟁에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쳐 싸운 프랑스군의 위대한 영웅이다.
그리졸레 원사가 치열한 고지전을 누빈 베테랑이었다면, 다차리 상병은 정전 직전의 가장 참혹했던 전장에서 부상을 극복하며 끝까지 임무를 완수했던 인물입니다. 그의 구체적인 행적과 활약상은 다음과 같다.
1. 6·25전쟁에서의 주요 행적과 활약
형제가 함께한 자원입대: 다차리 상병은 21세이던 1953년 3월, 유엔 프랑스대대 소속 육군으로 한국전쟁에 자원 참전했다. 특히 두 살 터울의 친형(피에르 다차리)이 이미 수개월 전 먼저 한국에 와서 싸우고 있었는데, 형과 재회한 그는 같은 프랑스대대 제3중대 지휘반에 배치되어 함께 전장을 누볐다.
정전 직전, 화살머리고지(Arrowhead Ridge)에서의 사투: 1953년 7월, 정전 협정이 체결되기 직전 강원도 철원의 화살머리고지에서는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려는 중공군과의 대규모 포격전과 참호전이 전개되었다. 다차리 상병은 "몇 시간 뒤면 휴전인데도 땅 위의 군인들은 서로 미친 듯이 포격을 퍼부었다"고 회상할 만큼 지옥 같은 최전선 중심에 있었다.
두 차례의 부상과 불굴의 의지: 다차리 상병은 정전 직전 적의 포탄이 그가 있던 벙커를 직격하면서 온몸에 파편상을 입는 등 두 차례나 큰 부상을 당했다. 부상 직후 프랑스로 복귀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국에 남아 끝까지 싸우겠다"며 귀국을 거부하고 전장을 지켰다.
정전 이후에도 이어진 임무: 1953년 7월 27일 정전 협정이 체결된 이후에도 그는 곧바로 떠나지 않고, 1954년 8월까지 서울에 위치한 유엔 프랑스군 파견대에 잔류하여 남은 임무를 끝까지 완수했다.
2. 수훈 기록과 기록가로서의 면모
훈장 및 표창: 격렬한 전투 속에서 보여준 희생정신과 공로를 인정받아 프랑스 참전용사 훈장과 대한민국 대통령 부대표창 등을 받았다.
역사의 기록자: 다차리 상병은 전쟁 당시 늘 니콘 카메라를 품에 지니고 다니며 포화 속의 전장뿐만 아니라, 전쟁 직후 폐허가 된 서울 거리와 그 안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고인이 촬영한 소중한 기록 사진들은 2023년 정전 70주년을 맞아 파리 한국문화원에서 특별 전시회로 소개되기도 했다.
3. "형제와 피 흘린 한국 땅에 묻히다"
참전 이후 평생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여겼던 그는 생전 여러 차례 한국을 다시 방문하며 눈부시게 발전한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고 깊은 감동을 표현했다.
2025년 3월, 향년 93세로 별세한 다차리 상병은 생전의 뜻에 따라 형제와 함께 피 흘려 지켜낸 대한민국 땅에 묻히게 되었다. 고인의 유해는 동료였던 자크 그리졸레 원사의 유해와 함께 국내로 봉환되어,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정부는 먼저 26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에서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이 모시겠습니다'를 주제로 유해 봉환식을 열고 두 참전용사의 유해를 맞는다. 오경준 국가보훈부 기획조정실장이 영접하며 필립 베르투 주한 프랑스 대사와 국방무관, 유족 등도 참석한다.
이어 27일 오후에는 부산 유엔기념공원에서 주한 프랑스대사관 주관으로 강윤진 국가보훈부 차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장식이 열릴 예정이다.
두 참전용사가 유엔기념공원에서 영면에 들면 이곳에 사후 안장된 유엔 참전용사는 총 37명으로 늘어나게 된다.Paris50ky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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