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전쟁 영웅 “별 셋 장군에서 중령으로, 오직 자유를 위해” - Héros de guerre du mois de mai : De général trois étoiles à lieutenant-colonel, uniquement pour la liberté

 

6.25 참전 당시 몽클라르 장군 @한불통신 파리 


“별 셋 장군에서 중령으로, 오직 자유를 위해”

국가보훈부, 5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랄프 몽클라르’ 중령 선정

- 프랑스 중장 계급 포기하고 대대장(중령)으로 자원 참전 

- 지평리 전투에서 ‘붉은 수건’의 백병전으로 중공군 인해전술 격퇴 

- “아이에게 자유 수호의 자부심을 물려주고 싶다” 진정한 군인 정신의 귀감


2026년 5월 3일) – 국가보훈부는 6·25전쟁 당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높은 계급을 버리고 참전한 프랑스 대대의 지휘관, 랄프 몽클라르(Raoul Magrin-Vernerey) 중령을 ‘5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장군’의 권위보다 ‘참전’의 명분을 택한 전설적 결단

몽클라르 중령은 제1차·2차 세계대전에서 수차례 부상을 입으면서도 승리를 이끈 프랑스의 영웅이자 육군 중장이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프랑스 정부에 파견부대 지휘관을 자원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가 대대급 규모의 병력만을 파견하기로 결정하면서 중장 계급인 그가 지휘를 맡기에는 격식에 맞지 않는다는 난관에 봉착했다. 이에 몽클라르는 “나는 프랑스의 중장이지만, 자유를 위해 싸우는 대대장이어도 상관없다”며 스스로 계급을 중령으로 낮춰 참전을 강행했다.

지평리 전투: 전황을 뒤바꾼 ‘붉은 수건’의 용기

몽클라르 중령이 이끄는 프랑스 대대는 1951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양평 지평리 일대에서 미군 제23연대와 함께 중공군 3개 사단의 파상공세를 막아냈다. 이것이 바로 6·25전쟁의 3대 결정적 승리 중 하나로 꼽히는 ‘지평리 전투’다.

그는 중공군의 기괴한 피리 소리와 인해전술에 맞서, 병사들에게 철모 대신 붉은 수건을 머리에 두르게 하고 총검 백병전을 진두지휘했다. 이 용맹함에 압도당한 중공군은 결국 후퇴했으며, 이 승리는 유엔군이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프랑스 언론이 기록한 그의 용기: “계급보다 고결한 가치”

참전 당시 프랑스 내에서는 인도차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한국 참전에 반대하는 여론과 정치적 방해 세력이 존재했다. 그러나 몽클라르는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곧 태어날 내 아이에게 아버지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자부심을 물려주는 것이 장군의 계급장을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답하며 참전의 정당성을 알렸다. 그의 이러한 단호한 의지는 프랑스 국민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으며, 프랑스군이 전장에서 보여준 투혼의 밑거름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기억하는 영웅의 유산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전공을 기려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으며, 경기도 양평 지평리에는 그와 프랑스 대대의 헌신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국가보훈부 관계자는 “계급이라는 명예를 내려놓고 오직 인류애와 자유라는 대의를 위해 전장에 뛰어든 몽클라르 중령의 정신은 우리 후세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정한 군인 정신의 표상”이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참고: 랄프 몽클라르 중령 주요 약력]

  • 189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생 (프랑스 귀화)

  • 제1·2차 세계대전: 프랑스 외인부대 소속으로 참전, 다수의 훈장 수훈

  • 1950년: 프랑스 육군 중장 계급으로 6·25전쟁 참전 자원 (중령으로 강등 수용)

  • 1951년: 지평리 전투 지휘 및 승리 견인

  • 1964년: 프랑스 파리에서 별세, 앵발리드(육군박물관) 안장 paris50kyo@gmail.com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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