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수 화백 "100살 때까지 4∼5년 더 열심히 해야지"

 

백영수 화백 "100살 때까지 4∼5년 더 열심히 해야지"

신사실파 유일한 생존 작가 백영수 화백, 4년만에 개인전

한불통신-ACPP) "화가가 좋은 전람회를 여는 이상으로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날 잊지 않고 전람회를 열어줘 고맙습니다."

김환기, 이중섭, 장욱진 등이 참여한 신사실파 동인 중 유일한 생존자인 백영수 화백(94)은 20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사이드 갤러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어눌하면서도 느릿한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이 갤러리에선 23일부터 백 화백의 개인전이 열린다.

2012년 광주시립미술관 이후 4년 만에 열리는 개인전으로, 작가의 대표작과 함께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제작한 드로잉과 콜라주 작품 25점이 전시된다.

신작들은 노환으로 더는 유화 작업을 하기 어려운 백 화백이 지난 겨울철에 한 작업들이라고 이날 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백 화백의 부인 김명애(68) 씨는 설명했다.

김 씨는 "남편이 겨울에 굉장히 건강이 안 좋았다. 선도 하나 못 그을 정도였는데도 이를 악물고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그림을 그리더라"라고 말했다.

백영수 화백의 '나르는 모자'

노환으로 건강이 좋지 못한 백 화백이 지난 겨울 작업한 작품. 색종이에 그의 작품세계에서 가장 큰 존재인 모자상을 그렸다. [아트사이드 갤러리 제공]

이렇게 백 화백이 혼신을 다해 완성한 작품들이 갤러리 1층에 내걸렸다.

백 화백은 다시 아이로 돌아간 듯 종이에 색색깔 펜으로 기하학적 선을 긋기도 하고 색종이를 오리거나 찢어 붙여 콜라주를 만들기도 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딸이 보낸 소포 상자를 해체해 말이나 성으로 재구성한 작품도 있다.

작품마다 한쪽 편에 작가가 떨리는 손을 붙잡고 새기듯이 적은 서명이 눈에 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아 그림은 한층 단순해졌지만 색종이 위에 그린 게나 모자(母子) 그림에선 거장의 예술세계가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준다.

김 씨는 "(작년 겨울에 만든) 작품들 보면 건강이 안 좋은 데도 열심히 하던 생각이 나서 감정이 복잡하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백영수 화백의 '창가의 모자'

백영수 화백의 1988년작 '창가의 모자'. [아트사이드 갤러리 제공]

전체 40여점의 작품 중 신작 25점을 제외한 나머지는 백 화백이 이전에 작업한 작품들이다.

대중에게 백 화백의 대표작으로 각인된 모자상 시리즈가 주를 이룬다.

작품에는 작가 자신을 상징하는 남자아이와 정신적 안식처인 어머니, 대리 자아이자 벗으로 추정되는 새가 주로 등장한다.

백 화백은 '왜 모자상을 즐겨 그리셨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모자상을 좋아합니다"라고 운을 뗀 뒤 다시 느리게 "아이하고 엄마는 떼어놓으려야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아이는 엄마 품을 생각하고 엄마는 아이를 영원히 잊지 않습니다."라는 답을 내놨다.

이에 김 씨는 "남편이 2살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 때 시어머니의 연세도 20살이 안 됐다. 그렇다보니 엄마 사랑을 잘 못받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모성에 대한 동경이 있는 것 같다"고 대신 답했다.

백 화백의 모자상은 가장 단순한 형태와 색으로 그려졌을 뿐인데도 그 안에 마치 동화 같은 따스함이 전달된다.

그는 1950년대부터 김환기, 이중섭, 유영국, 이규상, 장욱진 등과 순수 조형이념을 표방한 추상계열 작가들의 모임인 신사실파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유일한 생존 작가다.

백 화백은 신사실파 작가 중에서도 이중섭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간담회에서 자신이 2000년 출간한 회고록을 펼쳐보던 백 화백은 동료 화가들과 찍은 사진을 가리키며 "이건 전시회 보러 온 유영국이랑 돈까스 먹으러 갈 때야", "이건 국내에서 처음 열린 전람회에서 김환기, 백영수, 이응노, 박영선, 도상봉이랑 전람회 심사했을 때지"라고 설명하며 상념에 젖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최근 연 이중섭 전시는 보셨느냐"는 질문에는 "중섭이는 말도 없고 순한 사람이었어요. 중섭이가 부인이 고생한다며 가기 싫다는 사람을 1년만 가있으라며 보냈는데 그때 부인이 안 갔다면 어떻게 됐을까"라며 회고했다.

백 화백은 이어 "다른 사람은 다 죽었는데 나만 운이 좋아 살아있다"며 "이왕 산 김에 100살까지 살아야겠다. 4~5년 남았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lucid@yna.co.kr

백영수 화백 4년 만의 개인전을 앞두고 소감을 말하는 백영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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